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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트럼프여, 제국은 영원하지 않다

  • 관리자
  •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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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여, 제국은 영원하지 않다

2026.05.21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1. 제국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제국의 역사였다.

강한 나라는 주변을 통합했고, 질서를 만들었으며, 번영을 누렸다. 로마제국, 몽골제국, 오스만제국, 대영제국 등 시대마다 세계를 지배한 나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영원한 제국은 없었다는 점이다.

제국은 대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성장기에는 개방과 포용, 제도와 혁신을 통해 힘을 키운다. 하지만 절정에 오르면 점차 오만해지고, 내부 갈등이 커지며, 외부를 힘으로 통제하려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유지 비용이 성장의 이익보다 커진다. 결국 쇠퇴가 시작된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냉엄한 교훈은 바로 ‘영원한 제국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고, 아무리 막대한 부를 쌓아 올렸을지라도 시간의 흐름과 역사적 법칙 앞에서는 무력했다. 제국은 정점에 이르는 순간 이미 쇠퇴의 씨앗을 품는다. 비대해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도전은 끊임없이 제국의 기초를 흔들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내용이나 패턴은 비슷하다. 단지 주인공만 바뀔 뿐이다.

2. Pax Americana의 시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인류는 새로운 지배자를 맞이했다. 바로 미국이다. 압도적인 생산력과 군사력, 그리고 달러라는 강력한 기축통화를 무기로 삼은 미국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이 주도한 이 평화의 시대는 단순히 힘으로만 유지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자유무역, 민주주의, 세계화, 그리고 연합국을 아우르는 동맹 체제를 구축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패권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서구 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미국의 가치관을 받아들였고, 미국의 경제적 풍요를 동경했다. 거기에다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시작하자 미국의 위상은 절대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패권의 이면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좌절, 중동 지역에서의 끝없는 군사적 개입과 천문학적인 비용 지출은 미국의 국력을 서서히 좀먹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나도 무거웠고, 미국 내부에서는 "왜 우리가 다른 나라의 평화를 위해 피와 돈을 흘려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광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내부의 피로감과 외부의 균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3.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위상

그 균열의 틈새를 타고 무섭게 치고 올라온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후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를 지난 중국은 이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외치며 미국의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압도적인 인구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을 넘어 기술과 자본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거대한 경제권을 구축하며 미국의 세력권을 압박하고 있고, 군사적으로도 태평양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해군력을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위상은 과거와 같지 않다. 과거 미국이 손짓 하나로 국제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일극 체제(Unipolarity)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두 축이 충돌하는 신냉전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4. 트럼프여, 제국의 역사를 보라

America First (미국 우선주의)!

도널드 트럼프가 외치는 이 구호는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렸고, 그를 다시 한번 권좌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쇠락해가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노동자들, 세계화의 그늘에서 소외되었던 미국인들에게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는 약속은 달콤한 복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여, 고개를 들어 제국의 역사를 보라. 지금 당신이 취하고 있는 행보는 제국의 수명을 늘리는 길인가, 아니면 오히려 종말을 재촉하는 길인가?

미국 우선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 동맹국들을 향한 노골적인 압박, 국제기구와 기후협약에서의 탈퇴는 당장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동맹의 신뢰와 도덕적 리더십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다.

지금 무리가 무리를 낳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동맹을 경시할 때, 국제사회는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는 밀월 관계를 넘어 사실상의 군사·경제적 혈맹으로 묶이고 있으며, 브릭스(BRICS)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은 달러 패권에 도전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이 밀어붙이는 무리한 압박과 제재가, 결국 반미·탈달러라는 새로운 거대한 저항의 흐름을 낳고 있는 형국이다. 압박은 반발을 부르고, 고립주의는 적들의 연대를 낳는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증명하는 패권 쇠퇴의 전형적인 징후다.

5. 긴 안목으로 재설계하라

트럼프가 진정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면, 근시안적인 손익계산서에서 벗어나 역사라는 거울을 보고 긴 안목으로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

구분

근시안적 대처 (현재의 오류)

긴 안목의 재설계 (진정한 MAGA)

동맹 관계

단순 비용 환산, 방위비 압박

가치 공유, 신뢰 기반의 결속 강화

경제 무역

무차별 관세, 고립주의 무역

공급망 재편 주도, 첨단 기술 표준 선점

글로벌 리더십

국제기구 탈퇴, 책임 회피

규범 기반의 국제 질서 수호 및 주도

진정한 위대함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이웃을 협박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로마가 대제국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정복한 민족을 포용하고 시민권을 부여했던 개방성이 자주 꼽히듯, 미국이 20세기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전 세계 인재와 자본이 모여드는 열린 사회였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당장의 무역수지 적자를 몇 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도전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중심으로 우방국들을 다시 단단하게 묶어세우는 리더십이다. 동맹국들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역시 미국이 있어야 세계가 안전하다고 자발적으로 믿게 만드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6. 맺는 말

제국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은 지극히 타당한 말이며,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진리다. 하지만 제국의 종말이 반드시 비극적이고 파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현명한 리더는 힘의 정점에서 부드러운 연착륙을 준비하며, 힘이 아닌 제도와 가치로 오래도록 기억될 유산을 남긴다.

트럼프여, 당신의 거친 구호와 단기적인 성과주의가 당장은 일부 지지자들을 열광시킬 수는 있어도 미국의 국력을 지탱하는 뿌리를 무너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단순히 과거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기보다는 미래의 미국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냥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새로운 리더가 되는 것이다.

트럼프여, 부디 긴 안목으로 대처하라. 고립이 아닌 연대를, 배제가 아닌 포용을 선택하라. 그리하여 미국을 단지 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신뢰받는 나라로 만들 때, 비로소 당신이 그토록 염원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일시적인 신기루가 아닌, 거대한 역사의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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